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생의 절반

2009. 6. 20. 22:53 round 1


생의 절반
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 - 이병률



한 사람을 잊는데 삼십년이 걸린다 치면
한 사람이 사는데 육십년이 걸린다 치면
이 생에선 해야 할 일이 별로 없음을 알게 되나니


당신이 살다 간 옷들과 신발들과
이불 따위를 다 태웠건만
당신의 머리칼이 싹을 틔우더니
한 며칠 꽃방울을 맺다가 죽은 걸 보면
앞으로 한 삼십 년쯤
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아는데
꼬박 삼십년이 걸린셈


이러저러한 생의 절반은 홍수이거나 쑥대밭일진대
남은 삼십년 그 세월동안
넋 놓고 앉아만 있을 몸뚱어리는
싹을 틔우지도 꽃방울을 맺지도 못하고
마디 곱은 손발이나 주무를 터


한 사람을 만나는데 삼십년이 걸린다 치면
한 사람을 잊는데 삼십년이 걸린다 치면
컴컴한 얼룩 하나 만들고 지우는 일이 한 생의 일일 터


나머지 절반에 죽을 것처럼 도착하더라도
있는 힘을 다해 지지는 마오




+ 얼마 전, 친구에게 선물로 줄 시집을 고를 때 읽게 된 이병률의 시. 
  시집 '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' 中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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